동해, 태백, 속초
동해
고주목 나르기 놀이
동해 삼흥동 이로리 마을은 홍월평(洪月坪)넓은 들이 있고 "서쪽의" "더바지령"을 넘어 정선 "거문나루"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산간마을로는 대단한 큰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대원군 때에 경복궁을 중수하기 위해 기둥감인 고주목을 나르던 일에서 연유하여 목도놀이가 전승한다. 마을에서 집을 짓게 되면 주민이 모여 산에서 목재를 운반하는데, 줄로 목재를 끌어당기고, 나무밑에는 궁글대롤 받쳐 옮긴다. 그때는 흥을 돋우려고 풍물을 친다.
영등놀이
일년 중 동해안 어민들의 가장 큰 행사인 영등놀이는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와서 스무날에 간다는 바람신 곧 풍랑을 좌우하는 영등할머니를 위하는 제의이다. 아침에 주부가 주관하여 영신제를 올려 짚으로 만든 신체(神體)에 入神시킨 후 부뚜막에 모신다. 해가 지면 엽전, 실 등을 매달아 바다로 퇴송시킨다.
질먹기놀이
농가에서는 음력 7월 중순께 김매기(지슴)가 끝나면 동민이 서낭당 앞 뜰에다 음식상을 내다놓고 제사한 후에 음식을 먹고 농요를 부르면서 하루를 즐기는 질먹기를 하였다. 이때는 머슴 중에서 씨름이나 장치기로 "팔례"라는 장정을 뽑아 그해 농사를 제일 잘 지은 논밭을 가린다.
망상동 골안농악
망상동 괴란마을에는 동구에 수구림이 있고, 거리에 서낭당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고정체를 드린다. 그 때는 동민들이 풍년놀이, 법고놀이, 소고놀이, 풍년가 등 민요와 놀이를 별여 서낭신을 위무한다.
고청제 햇불놀이
약천동 앞산 기슭에 고청(高聽)이라는 서낭당이 있다. 동민들은 대보름날 새벽에 제물을 진설하고, 흰닭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3번 뿌린다. 고축을 하고 제단의 햇불을 내려 마을을 밝히고 안택한다. 이어서 마을 상·하로 나누어 상대편의 봉화불을 먼저 끄는 쪽이 이기는 햇불놀이를 한다.
보역사놀이
옛날에 삼호동의 죽림과 홍월평 마을은 모내기 철이 되면 자기네 마을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석전을 벌이고 늘상 싸웠다. 이 소식을 들은 부사는 보(洑)를 막아 물을 대고자 하였다. 그래서 보를 반으로 나누어 역사하게 하고 진편이 이긴편에게 술을 내고 한마당 어울리게 한 사실을 놀이화한 것이 이 놀이이다.
해신제 뗏불놀이
아득한 옛날에 향로등 사람들은 산신제를 지내나 해신제는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해신(海神)이 노하여 태수의 아들을 잡아갔다. 태수는 깊이 깨닫고 주민과 함께 해신제를 지내니 아들이 돌아왔다. 이로부터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영등제 때 바다로 뗏불을 띄어 보내는 풍속이 전승하게 되었다.
뒷뜰장 걸립패놀이
동해서 북평장(뒷뜰장)은 역사가 오래고 규모가 커서 영동에서는 유명한 장터였다. 그러나 이 장터는 뒷내가 자주 침식하여 붕괴의 위험이 있었다. 장터사람들은 서낭에 기원하고 제방을 쌓기위해 걸립패를 만들어 장날이면 놀이판을 벌여 모금을 하곤 하였다.
샘실 우물굿농악
지금은 시청 소재지가 된 샘실 마을은 예전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찬물내가 또는 냉천 등으로 부르는 샘이 있었다. 물이 귀한 해변에서는 그 샘을 귀히 여겨 대보름 아침에 농악대가 주도하는 우물굿을 하였다. 우물굿 농악은 우물굿에 이어 풍년굿, 법고놀이, 소고놀이, 마을놀이로 이어진다.
선돌말이
예전에 삼척과의 경계에는 "돌꽃이", 강릉과의 경계에는 "도두"라는 선돌(立石)이 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마을에서는 선돌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냈다. 곧 입동을 전후하여 선돌에 옷을 입히고 농악으로 神을 위로함과 동시에 동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한마당이 펼쳐져 왔다.
원님답교놀이
예로부터 북평지역에는 대보름날 저녁에 나이 수대로 다리를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일년신수가 대길하다고 하여 답교하는 풍속이 전래하여 왔다. 그때는 제등과 햇불을 밝히고, 학식이 있는 유림 중에서 천거하여 "원님"을 삼고 축하하는 원님놀이를 신명나게 하였다.
태 백
사시랭이
사시랭이는 태백시 동점동에서 발생된 전통민속놀이이다. 동점마을은 옛날부터 동(銅)을 캐내는 동광(銅鑛)이 있어서 퉁점이라고 불렀다. 동을 예전에는 퉁이라 하였는데 퉁을 캐내는 곳이 있다하여 퉁점이라 부르다가 한자표기로 동점(銅店)이라 하였다.
이곳에서 3-4백년전부터 자연적으로 밤샘을 할 때나 의병들이 밤에 番을 설 때 이놀이를 하였다. 사시랭이는 관서지방(關西地方)의 「곱쇠치기」와 유사한 놀이이나 불림소리가 다르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추렴을 할 때나 혼인, 회갑, 회혼식때 많이 하였고 일부 사람들은 아예 노름으로 가산을 탕지한 경우도 있다.
사시랭이의 생성시기를 3-4백년 정도 되었다고 믿는 것은 그 가사에 보면 「우리국왕 어데갔고 남한산성 피난갔소」라는 가사라든가, 역음사설에 『남한산성 줄불놓고 광주에 파발 놓고..』라는 대목을 봐도 병자호란때 이미 사시랭이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동광(銅鑛)이 성했던 동점(銅店)에서 발생한 사시랭이를 일명 철퇴라고도 하는데 이 놀이는 전구에서도 그 유형을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놀이인 것이다.
갈풀썰이
갈풀썰이는 민속놀이로서 태백시 창죽동을 지정마을로 선정하여 남자 47명, 여자 3명등 총 50명을 구성 단체원으로 보존 전승하고 있다.
태백은 산중지방으로 옛부터 많은 화전민들이 이주하여 와서 살다가 떠나곤 하였으나, 그후 이주성 화전 농경으로 점차 집단고정 농경사회로 바뀜으로써 척박하여진 농토에 유일한 자력증강의 수단으로 갈풀을 하여 퇴비를 장만하였다.
갈풀썰이는 갈풀 즉 참나무, 도토리나무 계통의 2-3년생된 나무를 갈풀이라 하는데 이것을 베어와서 작두로 썰어 퇴비를 장만하는 과정에서 유래되었으며 갈풀썰이는 음력 7월경 추수전에 마을 공동으로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 형식으로 하였는데 지금도 이곳 농촌지역에서는 행하여 지고 있다.
지게싸움놀이
태백시 화전동의 창죽과 적각 마을에서는 집단으로 퇴비와 겨울 땔감을 하여왔다. 두 마을사람들은 마을 사이에 있는 구봉산에 올라 좋은 곳을 차지하려고 힘겨루기와 재주겨루기를 하였다. 양쪽으로 갈라서서 지게목 잡고 뛰어넘기, 지게목발 잡고돌기, 지게작대기 잡고 돌기, 지게타고 걷기, 물지게 돌리기를 하였고,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지게를 한덩어리로 만들어서 미는 집단놀이를 하였다.
외나무 다리놓기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가 있지만 예전에 태백시 동점 검문소 앞에는 강폭이 넓어 여러 장의 널판자를 이어 만든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양쪽 마을의 동민들이 각각의 마을쪽에서 널판자를 잇대어 중앙에서 만나 연결하는 다리였다. 이때 다리발은 널판자가 이어지는 부분에 구멍을 내어 삼발 버팀목을 끼운다.
멧돼지 사냥놀이
산촌사람들은 눈이 오면 사냥할 것을 의논하고 창 줄목 등을 준비하고 몰이꾼과 창꾼으로 나누어 요령을 연습한 후 출발한다. 몰이꾼은 설피를 신고 꽹과리와 놋양푼으로 두드려 몰고, 창꾼은 창목에서 창으로 짐승을 찌른다.
속초
물치 용왕굿 용떡놀이
대포동은 한때 속초지방의 중심지역으로 전통적으로 어업을 중요 생업으로 삼았다. 대포동은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그중 내물치 부락에는 남녀 두 개의 성황당이 있어 지역 주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성황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남녀 성황산에 대한 한바탕 굿풀이가 끝난 후 항구 인근 공토에서 다시 요왕굿을 벌이게 되는데 각집에서 차려내온 젯상마다 용떡과 오방기가 놓이게 되며 각기 무녀들이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위한 대규모 웃판을 벌인다. 이들은 마을 주민들이 해온 용떡에다 꽃을 꽃고 시루를 머리에 인채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데 그 과정이 대단히 볼만하다. 성황제 및 용왕굿 놀이는 속초지방 해안 부락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민속놀이이다.
설악 산신맞이 놀이굿
설악산에 대한 제레행사는 신라시대 때부터 실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잡지 제1조 제사조(祭祀條)에 의하면 신라시대 때는 명산대천에 정기적인 세사를 지냈는데, 그 규모에 따라 소사(小祀), 중사(中祀), 대사(大祀)로 나뉘었는데 그중 소사를 설악산에서 치룬 것으로 되어있다. ; 이 "설악 산신맞이 놀이굿"은 산신제를 지낸 후 산신을 마을로 모시고 와 성황신·용왕신을 동참시키는 과정에서 산신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문을연다"는 의미로 벌이는 개문굿이다. 이곳에 참가한 무녀들이 놀이칼을 들고 일제히 신명나게 추는 무속춤을 전통예술적 차원에서 제조명 했다.
만천동 나룻배 싸움
구비 전설에 의하여 청초호에는 숫룡이 영랑호에는 암룡이 땅속의 통로를 오가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 어민의 실수로 불이나 청초호 주변의 솔밭을 태우게 되어 그 연기와 불로 인하여 숫룡이 죽고 말았다.이때 영랑호에 살고 있는 암룡이 크게 노하여 그 지역에 가뭄과 흉어 등으로 벌을 내렸다. 그후 농어민들은 정월보름날을 기하여 무녀와 박수를 동원하여 기우제와 용신제를 지내며 숫룡의 죽음을 위로하고 나룻배의 무사고를 기원하면서 한쌍의 나룻배의 힘을 겨루는 민속놀이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진 마을은 술과 음식을 이긴쪽에 대접하고, 이긴 쪽은 풍어와 대풍을 하게 된다고 믿으며 나룻배를 타고 오가며 하루종일 가무를 즐기며 놀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