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의 여류문인, 서예가로서 강릉 북쪽 北坪村에서 출생, 본관은 平山, 호는 師任堂 이외에 思姙堂, 媤姙堂, 姙師濟, 進士 申命和의 둘째딸이며, 어머니는 李思溫의 무남독녀인 龍人이씨다. 사임당은 천성이 온유하고 지모가 높아 현모양처의 자격을 구비하였다. 어려서 경전에 통하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針工 · 刺繡에 이르기까지 정묘하였고, 7세부터 安堅의 예법을 배워 山水 · 葡萄를 그렸으며, 점차 숙달하여 화풍이 여성적인 섬세와 巧緻를 발휘하여 뛰어났고 율법에도 능하였다. 19세에 監察 李元秀와 결혼하여 파주 율곡리, 강릉,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 등지를 옮겨 살았다. 33세때에 용꿈을 꾸고 셋째아들 栗谷 李珥를 낳았다. 47세때 남편 이원수는 水軍判官이 되고 다음해 평안도 지방에 출장 중 병으로 별세하였다. 이원수는 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에 贈職되었고, 사임당은 정경부인에 증직되었다. 그의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 사친(思親)등의 漢詩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강릉 烏竹軒에는 사임당의 遺品인 唐書屛風을 비롯해서 山水圖 · 蘆雁圖 · 蓮鷺島 · 梅花圖 ·葡萄圖 · 草蟲圖 · 자수 병풍등 1백여점이 율곡의 유품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꽃과 곤충을 그린 전체 8폭의 병풍으로 남아 있는 이 작품은 한국 정원에서 흔히 발견되는 흔하디 흔한 꽃나무와 채소와 곤충 및 동물을 아담한 구도와 형태, 중간 색조의 우아한 색채로 표현한 것이다. 흔히 무시될 수 있는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포착한 안목, 수박씨를 갉아 먹는 쥐들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 우미하면서 사랑스러운 조형 등으로 여성의 섬세한 취향을 한껏 드러냈다. 이 작품들은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을 잘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