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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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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여성3

김석주와 박씨의 兩世孝烈門

효자 김석주와 김익수의 처 열녀 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高宗 14년(1877)에 세워진 兩世孝烈門이 건립되어 있다. 이들은 부모와 남편을 남달리 잘 섬기어 항상 다른 사람들이존경했는데 부모와 남편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생활을 하였다.

李九淵의 妻 金氏 孝婦閣

이구연의 처 三陟金氏 효부각이 삼척 원덕읍 이천 2리에 있다.김씨는 20세에 남편을 잃고 수절하였고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시아버지가 병들자 정성으로 기도하였으므로 선인이 감동하여 침과 붕어를 주었다. 침을 놓고 붕어를 고아드려 媤父의 병이 완쾌되었고 이 일이 알려져 仁祖 6년(1628)에 효부각이 세워졌다.

金元仁의 처 파평윤씨 효열각

김원인의 처 파평윤씨는 천성이 효성스러웠고 남달리 의리가 있어 동기간에도 우애가 있었다. 남편이 병들자 집안살림을 도맡아 열심히 일하면서 부모님께 효도를 다했으며, 남편의 병간호도 열심히 하였다. 그러면서도 깨끗한 물에 목욕하고 정한수를 떠놓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고, 남편의 생명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했다. 이러한 파평윤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光武 3년(1899)에 旌閭하였다.

凍死한 남편따라 죽은 金氏

삼척김씨는 남편 李粲周가 먼 곳에 출타하였다가 돌오는 도중 凍死하였다. 남편 李粲周의 동사소식을 듣고 김씨부인은 급히 달려가 시체를 집에 까지 모셔왔으며, 동사한 남편의 시체가 녹지 않아 부인은 주야 14일 동안 시신을 안고 얼음을 녹였다. 남편의 장례를 치루고 부인은 그날 저녁에 남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삼척김씨의 열행을 기려 高宗 16년(1879) 旌閭 하여 烈女門을 세웠다고 한다.

李光植의 妻 沈氏 烈女門

심씨부인은 21세때 남편 이광식과 사별했고, 3년간 남편의 묘에서 시묘하였다. 시묘가 끝나자 남편의 생일날 결혼할 때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홀로 되신 시어머니께 인사를 올리고, 시종을 시켜 바닷가에 가서 게를 사오게 한 후 게장을 꿀에 타서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후 심씨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哲宗 6년(1885) 열녀문을 세웠다.

남편에게 인육을 먹인 慶州李氏

경주이씨는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식구를 봉양하고 살림을 잘 처리하여 묵은 빚을 갚았다. 또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했으며 시아버지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여 집으로 들어온 꿩을 잡아 봉양하였다. 시어머니가 종기로 고생하자 얼음을 깨고 거머리를 잡아 약을 만들어 낫게 하였다.남편 金病徑이 병들어 백약이 無效하자 인육이 특효라는 말을 듣고 자기의 넙적살을 베어 복용시켜 7일간 연명하게 하였다. 이때가 朝鮮後期 純祖 때였으며 그의 孝婦閣이 양양군 강현면 석교리에 있었다.

남편따라 죽은 旌善全氏

양양군 손양면 상운리에는 정선전씨의 열녀각이 있다. 전씨부인은 김규경에게 출가했으나 남편이 병석에 누워 있어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전씨는 남편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좋은 약은 다 구해 먹였으나 보람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장지를 양지바른 쪽에 정해놓고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고 의복도 세탁해 놓았다. 그리고 소복단장을 한 다음 장례 전날에 목을 메어 죽으니 이때가 그의 나이 32세때이다.

호랑이 동자 죽인 宜寧金氏

영월군 북면 공기 2리에는 朝鮮 憲宗때 내린 烈女學生洪禹輔儒人宜寧金氏之門四十四年二月命旌이라 새긴 열녀정문이 있다. 宜寧金氏는 홍우보에 시집갔다. 첫날밤에 밖으로 나갔던 신랑이 돌아오지 않자 신부가 신랑을 찾아보니, 호랑이가 신랑을 잡아 먹고 있었다. 신부는 첫날밤을 치르지도 못하고 신랑을 호랑이에게 잃었다. 처녀때 어여쁘고 마음씨가 착했으므로 산신령이 며느리로 삼기를 원해서 처녀에게 現夢하여 호랑이와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처녀는 산신령의 뜻을 거부하고 홍우보와 결혼했고, 첫날밤 호랑이가 홍우보(신랑)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남편이 죽은지 7년만에 호랑이 동자가 나타나서 아내로 맞아하겠다고 했다. 처녀신부는 남편이 죽은 장소에서 亥時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비수에 고춧가루를 진하게 발라 약속장소로 나갔다.호랑이가 덥치자 비수로 찔러 호랑이를 죽였다. 처녀신부는 양지바른 곳에 신랑을 고이 장사지낸 후 3년상을 치뤘으며, 평생을 수절하면서 남편의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처녀신부가 호랑이로부터 남편을 빼앗아 왔다고 하여 "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