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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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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생활의 변천

우리 식생활의 변천




지구상에는 수많은 인종과 민족과 국가들이 있어 각각의 생활양식에 따라 문화의 양상도 각기 특색을 지닌다. 민족마다 말, 문화가 다르고 음식·의복·주거의 양식이 각각 독특하게 발전되어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인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레비스트로스는 문화가 자연에서 어떻게 구별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인류의 식생활을 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동물은 다만 자연물을 식물로서 먹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본능적으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면 어떤 것이고 다 먹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일단 어떤 음식물을 먹는가 하는 것을 정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갖는 문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음식물은 그 자체가 문화적 소산이며 그 음식물의 조리방법이나 식사습관 등은 생활사로서 문화의 중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선사시대의 식생활

구석기시대에 타제석기로 자연물을 채취하여 요리를 하였으며 신석기시대 우리 농경문화는 마안형의 돌절구로 대표되는 북방계의 농업과의 관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해변이나 강가에 자리 잡은 어패류 채취민들의 식생활을 들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많은 조개무지(貝塚)를 남겨두고 있어 이 시대 사람들 식생활의 한 기념비가 되고 있다. 기원전 12세기 이전에 이미 벼농사가 시작된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어패류를 식용으로 이용하였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철기문화가 발달하여 농경의 기술로 혁신되어 벼농사가 크게 발달하였다. 또한 농산물의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술, 장, 김치, 젖갈 등을 만들어 오래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은 요리의 담당자가 되었고, 쌀밥이 귀족들의 주식으로 정착하였으며 조리법의 발달은 식생활의 계층화에 크게 자극되었다. 농경 중심의 제천의식과 이에서 비롯한 명절 등의 행사가 식생활의 폭을 훨씬 다양화 하였다. 지배계급은 불교와 함께 들어온 음차(飮茶)의 습관이 생기고 다기와 식기가 발달하고 얼음을 이용한 풍요한 식생활을 영위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들어오게 되어서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못하는 계율로 식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

육식의 쇠퇴로 식물성 식품을 더욱 맛있게 먹는 법이 연구 되었고 기름과 향신료의 이용도 많이 하게 되고 사찰음식이 발달하였다. 빈번해진 외국과의 교류가 점차로 민족의 식생활을 변천의 시대로 이끌게 하였다. 소금의 전매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 식생활의 큰 변혁을 가져다 주었고, 또한 고려청자기의 놀라운 발달이 식기의 고급화를 추진하여 식생활의 발전을 문화적인 차원으로 높여 주었다.

조선시대

조선왕조는 토지제도를 정비하고 농경기술의 발달에 힘을 쓰고, 각종 농식물의 품종을 개량하였고, 수리사업도 열심히 하여 식량이 많이 증산되었다. 조선시대는 계급사회로 빈부의 차이도 격심해져서 식생활에도 심한 차별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현재의 것과 비슷한 한식의 발달이 이루어졌다.조상에 대한 봉제사와 가족제도에 따른 식생활이 크게 중요시 되었다. 조선백자의 놀라운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렇게 하여 임진란이 일어나기까지 평화속에 식생활이 발달하였다. 임진란 후 담배 등 기호품의 수입이 식생활의 다양화를 가져오고 서양문물의 수입이 활발해졌다.

일제시대의 식생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식민지화 직후 일본은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조선의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약탈해 감으로써 그들의 소작인으로 전락시켰다. 하루 아침에 소작인이 된 조선의 농민들은 일본인 지주에게 많은 소작료를 지불해야 했다. 또 그나마 계약소작제로 불안정한 상태였으므로 그들의 식생활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하였다. 이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농촌을 등지고 도회지로 나가 막일꾼이 되거나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여의치 않았으니 이 시대 대다수 국민들의 식생활이란 궁핍 바로 그것이었다.

현대의 식생활

광복 직후 최악의 극빈 상태에서 또다시 발발한 전쟁으로 굶주림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가에서는 서구로부터의 원조물자, 보리혼식, 분식장려 등으로 식량난 해결에 박차를 가하였다. 60년대에는 식량난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또 영양에도 관심을 두어 식생활 개선이 촉진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식생활 개선은 서구식 식습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70년대에는 식생활에도 공업화 내지 산업화 되었다. 즉석식품이 식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식생활은 동물성 식품의 소비과다, 지방질의 과잉섭취 경향으로 성인병의 발병률이 증가되면서 동물성 식품섭취 위주인 서구식 식습관에 대한 반성이 촉구되고 있다. 또한 가공식품의 해독에 대한 논란도 일기 시작했다. 이들 식품에 대한 역반응으로 건강식품, 무공해식품, 자연식품 등에 관한 관심과 함께 합리적인 식생활 방안이 모색되게 이르렀다.